

𝒻ℴ𝓇
나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떤 날은 이유 없이 마음이 앞서갔고, 어떤 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제자리에 멈춰 있었다. 올해엔 ‘처음’이라는 말이 자주 따라붙었다. 시작은 아마 비어 있는 드라이브를 가만히 들여다보던 날이었을 것이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화면 앞에서 뭐든 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인지 올해엔 유난히 후회가 적다. 물론 후회가 없지는 않다만, 그 후회들 마저도 나를 조금은 앞으로 밀어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미뤄두었던 일들, 쉽게 손대지 못했던 마음들, 이제는 조금씩 꺼내볼 수 있을 것 같다. 급하지 않게, 도망치지 않으면서. 고마운 사람이 많다. 그리고 미안한 사람도 많다. 아마 이 둘은 늘 같은 자리에 있는 감정일 것이다. 고마움은 늘 미안함을 데리고 오고, 미안함은 고마움을 남긴다. 함께해줘서 고마웠다. 기다려줘서, 말없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웠다. 때로는 서운했을지도 모르지만, 그
𝒯
우리는 스스로를 하나의 결정체로 증명하려 한다. 분명한 형태, 일관된 태도, 흔들리지 않는 취향. 그러나 정체성의 지속성은 완벽한 보존이 아니라 파열을 통해 입증된다. 작업은 반복적으로 부서지고, 확신은 의심으로 갈라지며, 이미 완성되었다고 믿었던 구조는 다시 해체된다. 어떤 파열은 실패처럼 보이고 어떤 파열은 방향을 바꾼다. 하지만 균열 없는 형태는 결국 정지된 표면에 불과하다. 결정체는 깨지지 않아서 남는 것이 아니라 깨진 뒤에도 다시 응결할 수 있을 때 남는다. 그래서 성장은 완성이 아니라 파열을 감당하는 능력에 가깝다. “ 결정체임을 증명해야 하지만 , 파열을 통해 결정체의 영속성을 증명하기도 해야 한다 .” William Carlos Williams, 『 버지니아에 관한 에세이 』 에서 출발한 생각
ℒ
‘그래 이게 사랑이지’라는 말이 툭 나왔다. 나에게 사랑은 이런 모양새인 게 분명했다. 너의 가장 여린 부분을 응시하는 것 그렇게 널 한 입에 통째로 삼키는 것. 사랑한다는 것. 소년이 손을 열어 보여준 건 칼이었다. 분홍색 손바닥 위로 슬몃 피가 비쳤다. “연필이나 깎지 그러니?” 소녀는 분명히 비웃었다. 소녀는 뚫어지게 소년을 응시했다. 여자애에게 위로를 받아본 일이 있었던가? 생각나지 않는다. 어떤 것에도 놀라지 않는 여자애가 무서웠다. 소년은 소녀의 집에 놀러 가보지 못했다. 소년도 소녀를 초대한 일이 없었다. 그렇지만 해수욕장의 모래밭에 누워 있는 소녀와, 볼록한 가슴에 얹어주는 뜨거운 모래에 대해 상상하는 일은 즐겁다. 생일 파티 같은 것은 부유한 초등학생들이나 하는 짓이다. “아무한테나 손을 벌리진 않겠지?” 소녀는 똑똑하다. 소년은 히, 웃으며 천천히 손을 오무렸다. 손가락과 함께 칼이 사라져갔다. 김행숙, 『칼
𝒰
나는 한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해 얼마만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숭고하고 치명적이기까지 한 욕망, 위엄 따위는 없는 부재, 다른 사람들이 그랬다면 무분별하다고 생각했을 신념과 행동,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스스럼 없이 행했다. Annie Ernaux , 『단순한 열정』
𝒳
나에게 가르침을 주고 내 삶을 이끌어 온 것은 나의 체험이 아니라 그 체험을 이야기하는 태도였다. 모든 행위를 미적 관점으로만 보고 있던 나로서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도덕주의자들은 나의 행동을 악의라고 불렀다. 그런데 그들의 선의는 나의 악의와 충돌하면서 산산이 부서졌다. 사람들에게 해악을 끼치는 어떤 행동들은 증오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그들이 증명해 보여줘도 나는 단지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리는 노래를 통해서 그 행동들이 아름다운 것인지 혹은 우아한 것인지 판단할 것이다. 오직 나만이 그것을 수용할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다. 어느 누구도 나를 정해진 방향으로 이끌고 갈 수 없다. 다른 이가 내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나를 다소간 예술적으로 재교육시키는 정도에 국한될 것이다. 하지만 다른 이, 둘 중에 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이 상대를 교육시키는 것이라면 그 다른 이는 나의 주장을 납득하고 따라오는 위험을 감수해야 할
ℛ
장미에게는 시간이 없다. 단지 장미가 있을 뿐이다. 그것은 존재하는 매순간 완벽하다. 이에 비해 인간은 뒤로 미루거나 기억한다. 그는 현재에 살지 않는다. 뒤로 눈을 돌려 과거를 한탄하거나 그를 둘러싸고 있는 풍요로움을 의식하지 못한 채 발끝으로 서서 미래를 내다보려 한다. 중요한 건 존재 그 자체인 것을. 장미처럼 시간을 초월하여 자연과 함께 현재에 살지 않는다면, 그는 결코 행복하거나 강인해질 수 없다.
𝒢𝒢
나는 내 삶을 만드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것이 내 직분이고 내 사업입니다. Michel De Montaigne , 『수상록』
𝒩
그렇게 숨죽여 있었다. 성장은 응당 그런 것이라고. 나만, 나 혼자만 봤다.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이는 나의 일상에 과한 신성함을 부여한 시간이었다. 숭고한 행위를 하듯 자기 성찰을 하며 말이다. 자기 가학적으로 완벽을 추구해 스스로를 혹사시키는 사람의 작품에서는 그의 영혼적 향기가 난다. 한편 자기 자신을 알고 자신과 그의 이상이 동시간대에 있는 사람의 작품에서는 사람 냄새가 난다. 잘 가공하고 만들어진 그 어떤 향기보다 일상 속 그 사람의 순간이 담긴 냄새가, 자기 몸에 섞여 한데 어우러지는 그 체취가 좋다. 사람 냄새가 나고 싶다. 어쨌거나 밤은 무척 짧을 것이다.
ℒℰ
편지를 띄워 보낸 나는 머지않아 망각의 늪에 빠지겠지만, 당신은 그 편지를 못내 간직할 것을 알기에 신중한 낱말로 첫 문장을 쓴다. 허술하고 모호한 단어는 당신을 오해의 길로 유도할지도 모르니까. 오해와 이해 사이의 투명한 벽은 얼마나 쉽게 허물어지는지, 그 연약함을 알고 있다면 문장은 자꾸만 뒤로 물러나게 된다. 물러나고 또 물러나다, 종이 끝에 내몰리게 될 때쯤 거대한 망설임이 찾아온다. 종이를 접었다 펴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주름이 생겨나고, 주름이 다발처럼 엮일 무렵 그제야 한 글자씩 눌러 쓰게 된다.
ℋ
관념을 사용하지 ‘않기를’, 거리를 취하지 ‘않기를’, 판단하지 ‘않기를’, 지식에 호소하지 ‘않기를’, 주체가 되지 ‘않기를’! 오직 당신의 몸, 감각, 느낌을 사용해서 뛰어들기를, 즐기기를, 행동하기를! 행복이나 불행은 그저 상황을 재현하는 집단적이고 사회적인 관념임을, 안전과 안정은 감각을 억압하는 지성의 교란임을, 단 한 번뿐인 삶을 내 삶으로 만들어야 함을, 그러므로 불행이 곧 행복임을, 행복이 곧 불행임을 동시에 느껴야 함을


ℬ𝑜𝓋𝒶𝓇𝓎𝓈𝓂𝑒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보바리부인을 읽고 보바리즘에 대해 찾다 발견한 글 세상을 살며 불만과 환상의 유혹을 벗어나기 위해서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알아야한다. 철학자 허경은 “한 사람의 미래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을 대하는 태도에 달려있다”고 했다. 우리가 미래의 삶을 대하는 태도, 미지의 욕망을 대하는 태도는 지금의 삶 전체를 반영한다. 현재의 삶에서 자기 자신을 알아가야 한다. 다독거리기도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속물근성도 알아채고 허무한 생각을 걸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사유의 작업이 있어야 한다. 자기와의 깊은 친교, 고독한 조우가 필요하다. 보바리 부인이 탐내던 귀족의 세계는 자신의 결여를 반영한 세계다. 나는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 중 가장 최고는 결여된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허약하기 그지없는 자기가 보이면 어떤가. 자신은 자기 삶의 입법자다. 마음이 욕망의 기관차라 하더라도 그 주인은 나 자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