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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년 12월 31일
  • 2분 분량

‘그래 이게 사랑이지’라는 말이 툭 나왔다. 나에게 사랑은 이런 모양새인 게 분명했다. 너의 가장 여린 부분을 응시하는 것 그렇게 널 한 입에 통째로 삼키는 것. 사랑한다는 것.

소년이 손을 열어 보여준 건 칼이었다. 분홍색 손바닥

위로 슬몃 피가 비쳤다. “연필이나 깎지 그러니?” 소녀는 분명히

비웃었다. 소녀는 뚫어지게 소년을 응시했다.

여자애에게 위로를 받아본 일이 있었던가? 생각나지

않는다. 어떤 것에도 놀라지 않는 여자애가 무서웠다.

소년은 소녀의 집에 놀러 가보지 못했다. 소년도 소녀를

초대한 일이 없었다. 그렇지만 해수욕장의 모래밭에

누워 있는 소녀와,

볼록한 가슴에 얹어주는 뜨거운 모래에 대해 상상하는

일은 즐겁다. 생일 파티 같은 것은 부유한 초등학생들이나

하는 짓이다. “아무한테나 손을 벌리진 않겠지?” 소녀는 똑똑하다.

소년은 히, 웃으며 천천히 손을 오무렸다. 손가락과

함께 칼이 사라져갔다.

김행숙, 『칼』

우리는 특별한 사람을 만나면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 그 ‘특별한 사람'은 나의 비밀을 본 뒤 나를 외면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고백은 두렵다. 상대의 반응을 예측할 수 없으니까.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거짓이 아닌 진심을, 나의 상처를 보여주고 싶은 것은 자연스러우면서도 지독하게 고통스러운 욕망이다. 사랑은 결정적인 그 순간이 지나야 오거나 떠날 것이다. 시에서 소년이 소녀에게 보여주는 자기 자신 혹은 비밀은 ‘칼'이다.

소년은 칼을 갖고 다닌다. 칼은 증오, 피, 죽음을 매달고 있다. 맑고 순수하고 빛나는 소년의 이미지는 칼과 충돌한다. 그래서 시의 도입부를 읽고 있으면 마음이 아프고 떨린다. ‘분홍색 손바닥에 칼을 숨기고 다니는 소년'은 우리를 두렵게 하지만 동시에 무언가를 기대하게 만든다. 소년과 소녀 사이에 나타난 칼은 소년에게 무기가 아니라 꽃이고 비밀이고 사랑이고 맹세다.

그렇다면 소녀는 소년의 칼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까?

소녀는 태연히 소년에게 그 칼로 “연필이나 깎지 그러니?”라고 말한다. 소녀는 소년이 갖고 다니는 칼이 식칼이나 회칼이 아니라고 비웃는다. 애초에 소년이 기대했던 반응은 두려움과 따듯함 중 하나였을 것이다. 떠나거나 껴안거나. 그런데 소녀는 비웃는다. 입으로는 비웃지만 눈으로는 대담하게 소년을 응시한다. 아마도 소녀가 소년보다 더 황폐한 세상에서 살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소녀는 거칠고 폭력뿐인 세상에서 소년을 구하러 왔다. 둘은 동족이다. 더 나아가 소녀는 소년의 정신적 누이다. 밝은 세상에서 더 많이 아는 사람은 존경을 받는다. 하지만 어두운 세상에서 더 많이 아는 사람은 피와 죽음에 가까이 있기에 두려운 존재다. 소녀가 두려운 소년은 그녀에게 길들여진다. 두 사람은 결핍과 상처를 눈빛으로 교환하면서 사랑의 차원으로 넘어간다.

당찬 소녀는 소년에게 “아무한테나 손을 벌리진 않겠지?”라고 말한다. 그녀는 남자들이 ‘쉬운 여자를 공격할 때 사용하는 “아무한테나 다리를 벌리진 않겠지?”란 말을 패러디한다. 그 말은 “이제 넌 내거야"로 들린다. 소녀는 너의 비밀은 나만이 알고 있어야 한다고, 다른 누군가에게 자신을 고백하는 일은 이제 금지한다고, 서로에게 유일한 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러자 소년은 “히"하고 웃는다. “하하"나 “껄껄"이 아닌 “히". 분노 말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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